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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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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상
미상
미상
미상
1년
97년
103년
122년
157년
189년
1523년
최초의 세계
인간이 세계를 지어나가며 국가나 문명이 피었다가 지기를 반복하다.
신에 대한 최초의 기록
사람의 감정과 믿음으로써 인간을 초월한 힘을 세계로부터 이끌어낼 수 있다는 의견이 저술되다.
최초의 신 탄생
최초의 신이 탄생하다.
최초의 신 붕괴
신이 살해되고 그 여파로 주변이 황폐화되다.
전국시대의 시작
새로운 국가들이 등장하고, 땅을 얻기 위한 전쟁이 시작되다.
거대한 유실
운경雲鏡국의 초대 황제가 등장하여 주변의 국가들을 평정하기 시작하다.
수많은 전투로 최초의 시대와 관련된 거의 모든 기록이 말소되다.
현신의 존재가 알려지다
‘현신’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다.
전국시대 종료
운경국이 대륙을 통일하며 전쟁을 끝맺다.
이단사변
대륙 내 현신의 접근성에 대한 논란이 일었으나 황실이 현신과 무원 사막을 독점하기로 결정하다.
신민반란
국가에서 신이 죽은 땅을 독점하자 백성들이 반발하며 전국적으로 봉기를 일으키다. 민심을 잠재우기 위해 묘지로의 접근이 허용되다.
현재
운련화가 창설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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雲鏡國
운경국
대륙의 중앙에 위치한 비옥한 평야 지대 유옥을 중심으로 자리한 대제국. 유옥평야에 장평이라는 도시를 세워 수도 삼고 동서로는 몽림 산림과 무원 사막, 남쪽으로는 만경 해안에까지 걸쳐 있는 넓은 땅을 갖고 있다. 97년 초대 황제가 스스로 칭제하며 전국시대의 대륙에 이름을 알린 것을 시작으로, 운경국은 현신을 전쟁에 개입시킴으로써 100여 년간 이어지던 전국시대를 급속도로 종결시키고 대륙의 패자로 공고히 자리매김했다. 이후 전국시대의 잔재를 평정하고 영토를 확장하니 비로소 천사백여 년간 이어져 오는 대제국이 되었다.
의식주 문화는 지역, 또는 개인에 따라 차이가 나지만 으레 부유층은 비단, 가난한 이들은 목화 천이나 삼베로 옷을 지어 입는다. 음식을 먹을 때는 숟가락과 젓가락을 모두 사용하며 부유한 자들은 기와로, 빈궁한 자들은 짚으로 지붕을 얹는다. 육지에서는 쌀이 흔하고 바다에서는 물고기나 소금이 흔하되 현신의 힘으로 지역끼리의 교역이 빠르게 이루어져 지역별 물가의 차이는 극단적이지 않다. 반주기적으로 과거제를 실시하여 고을마다 관리를 뽑고 신하를 내려보내 지역을 각기 관리하게끔 하는데, 다섯 해에 한 번씩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게 만들어 부정부패를 방지하고자 했다.
양천의 구분뿐만 아니라 하는 일에 따른 지위의 차이도 있다. 으레 삼대 이상이 내리 관료였던 경우는 귀족이라 통칭한다. 역시 현신의 힘 덕에 나라의 외곽이라 해도 삶을 영위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고, 국경선 너머에서 침략할 만큼 강대한 타국도 존재한 적이 거의 없어 관할 지역 위치에 따른 지위의 차이는 적다. 황실에서는 24절기마다 황실 소속 현신을 위한 국가 단위의 제사를 올려 권력을 공고히 다진다. 외부에서는 미약한 소국이 생겨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현재에 이르러 개인의 힘으로 가질 수 없는 결과물을 얻기 위해 현신의 힘을 빌리는 것은 흔한 일이 되었다. 충분한 기원과 재료로 삼을 공물을 바치고 현신의 사당 측 관리자들과 협의하면 원재료를 생산물로 바꾸는 것은 금방이다. 목화솜을 천으로, 천을 옷으로 만들어 대량으로 파는 활동 역시 가능하다. 다만, 논리적으로 가능할 뿐 현신이 모든 소원을 무한정으로 들어 줄 수는 없다. 대개 신을 위한 공물로 금전을 요구하는 일이 잦지만, 상세 조건은 현신과 그를 모시는 이들의 신념에 따라 천차만별. 성취를 위해 똑같은 노력을 하더라도 현신의 도움을 받으면 우위에 서기 더 쉬워, 신도로서 얼마나 더 충실한지에 따라 사회적 성공 여부가 갈린다는 이야기도 퍼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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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
현 연제衍帝가 10년 전 즉위했을 적부터 여러 현신과 그들을 숭상하는 자들로 인해 나라는 이미 혼란하였다. 천사백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운경에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외세는 드물었기에 내부의 인간들은 욕망의 추구에 골몰했다. 모든 사람이 행복한 세계를 꿈꾸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무조건 남들보다 높게 올라가 타인을 내려다보아야만 만족하는 이들도 존재했다. 신도가 많은 현신이 약한 부류보다 현상을 바꿀 수 있는 권한이 강했으므로 사람들은 따르는 신이 강해져 자신의 소원만을 들어주기를 기원하니 저자의 소문은 나라에 망조가 들었다고 일렀다.
지난해, 운경의 제사를 맡는 현신이 새로 부임한 제사장에게 살해당했다. 조사 과정에서 국내의 수상한 움직임이 포착되었다. 비교적 약한 현신들을 의도적으로 죽여 신의 파편을 모은 뒤 그것을 이어 붙여 강력한 현신을 빚어내고자 한 정황이 확인된 것이다. 수색이 시작되었지만 이미 주요 인사들은 잠적한 뒤였다. 국내의 신도들이 적대 세력의 처치를 요구하며 살인 사건과 재난의 문제가 불거졌으나 주동자를 찾기 어려웠다. 이에 1522년 봄, 현신과 그에 감응할 인간 소수를 모아 대책 기관을 창설하기 위한 시범 시도가 비밀리에 진행된다. 시도 자체는 효과적이었으나 인원이 지나치게 적어 불안정하였다. 하여 운경 1522년의 겨울, 황제는 운련화雲戀花라는 기구의 설립을 공표하고, 들끓는 부정을 해결하겠다는 명목으로 예해를 가진 인간과 현신을 모집하는 방을 정식으로 내붙였다.
▣ 국외
대륙 대부분을 정복하기는 했으나 운경국이 유일한 국가는 아니다. 변방의 관리가 까다롭고 인구가 적은 곳들을 중심으로 소국이 몇 자리한다. 실상 말이 소국이지 제국의 속국이나 다름없는 처지. 독립을 원하는 민족 중 제국이 직접 다스리기 까다로운 지역에 터를 잡은 부류를 국가로 인정하고, 주기적으로 공물을 받으며 눈감아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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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중앙 : 유옥 평야
온난한 기후를 품고 펼쳐진 드넓은 평야는 토지의 질도 좋아 만물이 자라나기 좋았기에 풍요의 축복을 받았다 하여 유옥瑜沃 평야라 불러왔다. 북에서 흘러 내려와 평야를 관통해 남쪽의 바다까지 닿는 거대한 청린강靑鱗江 을 중심으로 사람이 모이고 문화가 발전해왔다. 이에 왕조의 시작과 함께 강의 범람이 닿지 않는 구릉 위에 견고한 성을 축조하니, 오래도록 평화롭다는 뜻의 장평이라 명명하고 운경국의 도읍으로 삼았다.
수도 장평長平
유옥평야의 가장 높은 구릉을 중심으로 세워진 수도, 장평. 성문을 들어서는 순간 번성이라는 단어를 체감할 수 있을 정도로 크게 성장한 도시이다. 밤이면 별이 땅 위에 뜨는 불야성. 낮이면 도시 곳곳의 능수버들과 능수벚꽃이 흐드러진 낙원. 구릉 위로 올라앉은 거대한 규모의 금와성金瓦城은 황제가 기거하는 곳으로, 장평 어디에서 보아도 올려다볼 수밖에 없는 구조로 축조되었다. 희게 칠한 목재에 색색깔의 단청, 금빛 기와로 지어진 이 거대한 성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은 성 초입에 자리한 수령 1000년으로 추정되는 회화나무 한 그루와 하늘뿐이다.
오향장五向場
사람들은 대지와 강이 키워낸 것들로부터 생계를 이어 나갔으니, 자연스레 이를 사고파는 거대한 시장이 열리게 되었다. 처음에는 가축, 곡식, 과일, 생선, 소금. 다섯 가지가 모여든다고 하여 오향장이라 부르기 시작했으나 지금은 우스갯소리로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을 사고팔 수 있으며, 나를 제외한 모든 것을 잃어버릴 수 있는 곳.’이라 칭하기도 한다. 그만큼 역사도 깊고 규모도 큰데다 거래되는 물자도 다양하다. 나라의 눈을 피해 암암리에 불법적인 것을 거래하는 이들도 있다는 모양.
축생畜生의 난과 기곤병棄坤病
풍요의 상징이었던 이 땅은 욕심으로 인해 새붉은 피로 물드는 일이 잦았으니, 개중 큰 난亂을 꼽으라면 대략 400년 전 발생한 축생畜生의 난이다. 이 반란은 유옥평야에서 큰 세를 떨치던 귀족 집안에서 기존의 운경국에게 반기를 들고자 현신을 포함한 대규모의 사병을 일으킨 것을 시작으로 6개월간 이어졌다. 난이 진압된 후 관련된 인물과 현신은 모두 숙청 및 처형되었으며,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축생畜生이 일으킨 난이라 하여 대귀족이었던 이들의 격을 철저히 낮추고 역사에서 지워버렸다. 이 내란 당시 죽은 이들의 피가 땅을 적시니 이후 농사가 제대로 될 리 없었고, 기근이 이어진 데다 전염병까지 겹쳐 피해는 오래도록 이어졌다. 괴이하게도 이 전염병에 걸린 이들은 곡기뿐만 아니라 물조차 삼킬 수 없어서 말 그대로 서서히 죽어갔다. 마땅한 치료 방법도 없어 가히 재앙과도 같은 병, 이에 땅에 버림받았다 하여 기곤병棄坤病이라 하였다.
동부 : 몽림 산림
유옥평야를 지나 동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다 보면 높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산맥과 하얀 안개가 눈을 가리는 숲, 몽림(雺林) 에 다다른다. 대륙의 북동부를 넓게 차지하고 있는 산림은 햇빛이 잘 들지 않아 사시사철 서늘한 기후로, 365일 중 360일을 안개와 함께하며 이른 가을부터 눈이 내린다. 안개가 워낙 짙어 길을 잃는 일은 부지기수요, 안개 속에 가려진 절벽으로 떨어지는 일 역시 일상이라 실종, 사망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허나 몽림은 악명 높은 미로이자 미지의 숲인 만큼 사람이 숨기 좋은 곳이다. 도망자나 범죄자부터 단순히 타인과 부대끼며 살기 싫었던 이들까지, 갖가지 이유를 가진 이들이 숲을 찾는다. 많은 이들이 오래 버티지 못하고 생을 잃었으나 극소수는 산림에 집을 짓고 정착할 수 있었다. 대부분 흩어져 자급자족하며 은둔하는 삶을 살았지만, 드물게 다른 몽림의 정착민을 만날 경우 모여 작은 군집을 만들거나 서로의 위치를 공유하며 교류를 이어 나가기도 했다. 산림 밖의 사람들과는 아예 교류하지 않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무역상과 주기적으로 거래하며 도움을 주고받는 이들도 있었기에 외부와의 교류에 대해서는 군집마다 다른 양상을 보인다. 생계는 주로 수렵이나 채집으로 이어진다.
안개가 자리할 때 외부인이 산림 정착민의 도움 없이 몽림을 지나는 것은 무모한 짓이지만, 겨울의 육몽절(六雺絶) 에는 안개가 걷히고 보다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다. 육몽절의 6일 동안은 안개도 끼지 않고 짐승도 나타나지 않지만, 반드시 한 번의 큰 폭설이 내린다. 그런데도 평상시에 비해 사고가 현저히 줄어드는 터라 외부인들은 대체로 이 때 몽림을 방문하곤 한다. 몽림을 탐사하고 온 이들의 말에 의하면 만경으로 이어지는 남쪽은 강이나 냇물이 흐르며 작은 소동물들이 목을 축이고, 무원으로 이어지는 북서쪽은 갈수록 가파른 산길과 절벽이 이어져 험난하지만, 나무가 사시사철 푸르고 산이 높아 떨어지는 절벽과 너머의 사막의 풍경조차 절경이라고. 동시에 먼 옛날부터 사람의 손을 거의 타지 않다 보니 태초의 모습을 가장 온전히 품고 있는 지역이라 알려져 있다.
남부 : 만경 해안
곡창 지대의 남쪽으로 내려오는 강을 따라가면 해안 지대에 도달한다. 강의 하류 근처에서는 농사짓는 이들이 많고, 바닷물이 역류하는 것을 막기 위해 둑을 견고하게 쌓았다. 어업과 조선술이 발달하였으며 현신의 도움을 받아 해조류를 양식하는 이들도 확인할 수 있다. 해안 지대에서 만들어진 선박은 으레 강을 따라 남북으로 이동한다. 이 배를 약탈하기 위한 해적 무리는 경계를 늦출 때마다 들끓어 해당 사안은 늘 강 하구를 다스리는 관리들의 책임이 된다. 한낮에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 백금의 모래사장처럼 반짝이는 염전을 볼 수 있다.
만경의 해안은 구불구불하여 만과 곶이 많다. 경사가 완만한 서쪽은 대개 갯벌 지역이며 동쪽으로 갈수록 모래사장과 항구가 늘어난다. 만의 가장자리에서는 수상 가옥도 일부 볼 수 있다. 해안보다 더 남쪽으로 내려가면 여럿 모여 있는 작은 섬들이 나오는데, 대부분은 큰 수원의 부재로 해적의 근거지로나 여겨지는 경우가 잦다. 삼일장으로 어시장이 열리나, 유옥의 오향장과는 명백히 특성이 다르다. 이목을 잡아끄는 화려함 대신 여러 의미에서 돈과 비늘의 비린내가 도드라지기 때문.
날씨는 변덕스럽다. 맑았던 하늘에서 순식간에 용오름으로 돌아오는 일은 예사. 이에 어부와 선원들은 곧잘 해신당海神堂 을 찾는다. 밤에 가면 바다가 말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신당은 중앙 해안의 기암절벽 바로 위에 자리한다. 밑으로는 파도가 치는 석굴이 뚫려 있으며, 나선형의 계단 혹은 경사로를 따라 위아래를 오갈 수 있다. 기와를 얹은 여러 채의 건물로 구성된 이 공간은 바다 관련 신들을 여럿 모시는 만신전 형태로 운영된다. 지역 내 신도가 가장 많은 여덟 명 내외의 현신이 기거하며, 특정 현신의 힘이 약해지면 예해를 가진 소속 신도 간 논의를 통해 해당 현신을 교체할 수 있다.
해신당에서는 항해 부적을 파는 소소한 활동이나 운송품에 방부 효과를 부여하는 대규모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특히 만경에서 출발한 배가 수도까지 공물이나 세금, 특산물을 실어 나르기 때문에 운송 업무는 해신당의 손을 타는 경우가 대부분. 새로 부임하는 관리가 내부 대신도들과의 관계를 긍정적으로 구축하는 것이 가히 필수적이다 보니 마찰이나 부정부패가 발생하기도 하는 눈치다. 하루에 네 번 울리는 신당 중앙의 거대한 종은 음색이 특히 아름다우며, 어느 신도가 돌아오지 않는 가족의 안녕을 빌기 위해 만들 때 자신의 육신을 던져 넣었다는 전설이 얽혀 있다.
서부 : 무원 사막
대륙의 서쪽에는 사막이 자리한다. 단순한 모래사막이라기에는 사막의 끝자락, 유옥이나 만경과 맞닿은 지점을 제외하면 선인장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황폐하다. 해가 내리쬐는 낮에는 지나치게 뜨겁고 달이 떠오르면 뼛속이 시리도록 추운 날씨, 불규칙적으로 거세게 부는 돌모래바람, 무엇을 심어도 제대로 자라지 못하는 땅. 자연스레 살아있는 것들이 기피하여 생물체를 찾아보기가 힘든 ‘죽은 땅’이나 다름없고, 그나마 떠돌며 살아가는 이들이 있다고 한들 대부분 이곳을 버려진 땅이라 인식하니 무원無院 이라 불린다.
과거 ‘최초의 신이 있었던 시대’에 사람들이 모여 큰 나라를 이루고 살았던 지역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무원의 곳곳, 특히 중심과 먼 지역에서 군집의 흔적이나 무너져가는 건물의 잔재 따위를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지역과 맞닿은 부분으로부터 서쪽, 무원의 중심으로 향할수록 사막은 더욱 건조하고 거칠어지며 황폐해진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 중심에는 작은 도시 규모의 호수가 하나 있다. 이 호수는 과거 구전으로만 내려오는 설화 속 ‘최초의 신’이 붕괴한 자리라는 전설이 있어 그 이름을 따 명요호暝㿢湖 라고 불리고, 독특하게도 그 주변은 거센 모래바람 없이 유독 고요하고 잠잠하여 시간이 멈춘 것 같다는 평이 많다. 명요호는 겉보기에는 평범한 호수와 다를 바 없으나 역시 주변에는 풀 한 포기 없고, 투명하지만 그 안쪽 대신 하늘을 거울 담듯 비추어내는 물은 지나치게 짜고 써서 도저히 사람이 마실 수 없다. 그 너머는 모래바람이 끊이지 않고 더욱 황폐하여 도저히 넘어갈 수 없는 지역으로 알려져 있다.
최초의 신이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신의 유해가 보다 밀집되어 있다고 하여 오가는 이들이 있었으나, 그마저도 157년 이단사변 이후로는 피와 죽음으로 물들었다 하여 발길을 꺼리는 곳이 되었다. 때문에 먼 옛날 풍요의 상징이었던 지역이지만, 현재에 이르러서는 동물을 먹일 풀이나 사냥할 가축 따위가 없으니 유목 생활을 하기조차 적합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을 터전 삼아 살아가는 이들이 아예 없지는 않으나, 극소수인 탓에 인구 밀도는 지극히 낮고 생활상 또한 제각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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