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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

기록도, 문명도, 신화조차도 존재하지 않았던 아주 오래전. 태초에 인간이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 터전을 짓고 집단을 이루어 삶을 이어 나갔으며, 그에 따라 크고 작은 나라가 피었다가 지기를 반복했다. 오랜 시간 인간들은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고 또한 유를 무로 되돌리기도 했으니 인간은 강인한 발톱도, 단단한 어금니도, 두꺼운 가죽도 없었으나 욕망과 마음이라는 무형의 힘을 가져 세상이 곧 그들의 바람에 따라 움직이고 변화했다. 언제까지고 인간이 세상의 주인일 것만 같은 시대였다.

하지만 사람들의 욕심은 영영 채워지지 못할 독과 같았던 탓에 욕망이 충돌하고 감정은 어긋났으며 과욕은 예정된 화를 불러일으켰다. 비는 내리지 않고 강은 이미 바닥을 드러낸 지 오래였으며, 짐승들이 인간의 터전으로 내려와 사람을 먹이 삼았다. 하늘에 붉은 구름이 뜨고 오색찬란한 꽃들이 검게 물들어 죽음의 향을 풍겼다. 기록과 문명이 생긴 이래 인간들의 힘으로 헤쳐 나가지 못할 절멸의 상황이 당도하매 이에 많은 이들이 모여 간절히 세상의 구원을 소원했다.

그 믿음과 바람이 모이고 결합하여 형태를 갖추매 세상에 비로소 현현했다. 그것은 인간으로부터 비롯된 존재이되 인간이 아니며 이 세상의 것을 초월한 힘을 갖고 있어, 많은 사람이 그것을 믿고 자신들의 바람을 염원하니, 그것이 최초의 신神이다. 

신은 과연 전능하여 사람들의 바람을 이루어주었다. 인간들이 신에게 기우제를 지내면 얼마 지나지 않아 비가 내렸으며, 전염병이 사라지기를 바라거든 병의 기세가 사그라들었다. 그러나 세상은 인간 대다수가 바라던 것처럼 완벽하게 풍요롭고 평화로워지지 않았다. 여전히 자연재해는 일어났고, 질병은 존재했으며 세상 어딘가에서는 사람들이 기근으로 고통받았다. 

이에 신을 의심하고 믿지 않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세상의 멸망을 눈앞에 두고 하나로 모였던 감정들은 점차 분리되어 충돌하고 모순되기 시작했다. 신은 인간이 이끌어낸 존재였던 탓에 힘의 원천이 되는 믿음이 사라지니 자연히 힘이 약해졌다. 개중에는 완벽하지 못한 신성에 대해 불만을 품는 이들이 있었고, 또 한편으로는 신성을 독차지하고자 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그리고 그렇게 어긋난 욕망과 다시 몸집을 부풀린 과욕이 결국 신을 살해하니, 그 유해가 힘을 잃고 딱딱하게 굳어 온 세상에 산산이 부서져 흩어졌다. 

이것이 최초의 신화이며, 이제는 아주 오래되어 구전으로 내려오는 설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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